행복의 기록, 난중일기

Hyekyung HwangHyekyung Hwang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마음의 지혜: 미래 사회와 역량, 한국인의 행복과 회복 탄력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강연장에서 나는 감사노트를 꺼내 한 줄을 적었다.

아이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감사하다.


10점짜리 행복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교수님은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1년에 100점짜리 행복 한 번 경험하는 것보다, 10점짜리 행복을 열 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큰돈 들지 않는, 대단하지 않은 행복. 힘든 하루 끝에 가까운 사람과 별로 비싸지 않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 그런 작은 순간들이 마음을 '살짝' 풀어주고, 그 힘으로 우리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들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때문에.


난중일기, 위대한 장군의 10점짜리 행복들

교수님이 분석한 난중일기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나이다" 같은 장엄한 문장들이지만, 실제 난중일기의 대부분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무언가를 드셨던 이야기.
둘째, 부하들과 백성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었던 이야기.
셋째, 누군가와 함께 나눈 수다.
넷째, 본인과 타인의 고통과 슬픔.
다섯째, 걷는 이야기.
여섯째, 원균 뒷담화. (7년간 무려 38회!)

절반은 고통과 시련이고, 절반은 10점짜리 행복들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비슷한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과거에 적어둔 기록을 떠올리며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풀었다. 갓김치와 돌문어를 나눠 먹으며 동이 틀 때까지 부질없이 떠들었던 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출근했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적으시면 됩니다. 한 분 한 분이 난중일기를 쓰시는 거고요. 한 분 한 분이 이순신 장군처럼 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의 작은 난중일기들

우리 아이는 그림일기와 감사노트를 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나도 요즘 감사노트를 조금씩 쓰고 있다. 감사한 사람에게는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10점짜리 행복들을 하나씩 모아가는 것이다.

어제 강연을 들으며 적은 감사노트의 그 한 줄이,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아이

요즘 잠자기 전에 그림책 대신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얼마 전 아이가 점심 한 끼를 삼각김밥으로 먹어야 했던 날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다. 토끼풀 기사 중 '목요일부터 급식 못 먹는다는데…이유가 있다'라는 기사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중간에 말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 그만 읽어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분들의 상황이 자기 일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특히 대부분의 비정규직 조리사 분들이 학교 방학 중에는 거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아예 못 받는 경우도 많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아프다고.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소수가 그럴 거라고. 그리고 그걸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

아이의 그 말이, 내가 강연 중에 적은 감사노트의 이유였다.

공감할 줄 아는 마음. 남의 아픔에 마음 아파할 줄 아는 마음. 그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김경일 교수님은 10점짜리 행복을 기록하면 회복 탄력성이 좋아진다고 하셨다.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감사한 마음을 기록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도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고.

우리 가족의 작은 난중일기는 오늘도 한 줄씩 쌓여간다.
그림일기로, 감사노트로, 그리고 잠자기 전 나누는 이야기로.


오늘의 10점짜리 행복: 이 강연을 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떠올렸다는 것.


📝 강연 내용 요약

강연 제목: 마음의 지혜: 미래 사회와 역량, 한국인의 행복과 회복 탄력성
강연자: 김경일 교수 (인지심리학)

전대미문의 수명 연장 시대

  • 1932년생의 기대 수명은 35세였지만, 실제로는 92세까지 사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시대가 되었다.

  • 1960년생부터는 산모 기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양 상태로 태어난 첫 세대다.

  • 인지심리학자들의 예측: 1960년생 상위 10%는 130세까지 살 수 있다.

  • 1970년생은 55세 현재 92.1%가 생존해 있으며, 45세에서 55세 사이에 가장 적게 사망했다.

  • 1980년생은 45세 현재 98.6%가 생존. 언제 죽을지 감도 안 오는 세대.

한국인만의 독특한 특성

  • 한국인은 신을 직접 선택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는 유일한 문화.

  • 종교를 "믿는다(believe)"가 아닌 "다닌다"고 표현하는 유일한 언어.

  • 두렵고 무서울 때 신이 아닌 "엄마"를 먼저 찾는 문화.

  • 장화홍련 속 귀신도 관할 행정기관을 찾아가 민원을 넣는 나라.

  • 일본이 "외로운 사회"(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고통)라면, 한국은 "괴로운 사회"(만나기 싫은 사람을 자꾸 만나는 고통).

행복의 기술: 크기보다 빈도

  • 1년에 100점짜리 행복 한 번보다, 10점짜리 행복 열 번이 훨씬 낫다.

  • 10점짜리 행복이란: 큰돈 들지 않고, 가까운 사람과 음식을 나누며 넋두리하고 수다 떨며 마음이 '살짝' 풀리는 것.

  • 그 힘으로 우리는 꾸역꾸역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간다.

난중일기가 가르쳐주는 것

  • 전 세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 10점짜리 행복을 경험할 때마다 기록했다.

  • 난중일기 에피소드 유형 순위:

    1. 무언가를 드신 이야기

    2. 부하들과 백성들이 말 안 듣는 이야기

    3. 누군가와 나눈 수다

    4. 본인과 타인의 고통, 슬픔

    5. 걷는 이야기

    6. 원균 뒷담화 (7년간 38회)

  • 위대하고 장엄한 문장은 전체의 2%도 안 된다.

  • 이순신 장군은 기록을 통해 비슷한 시련이 왔을 때 과거의 해결 방식을 떠올리며 회복했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방법

  • 오늘부터 10점짜리 행복을 경험할 때마다 기록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난중일기를 쓰는 것이다.

  • 기록하지 않으면 망각된다. 기록해야 떠올릴 수 있다.

  • 장엄한 의지, 불굴의 정신력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발휘하게 만든 사전 요인은 10점짜리 행복의 기록이다.